쾌락의 질적 차이 - 밀의 공리주의, 에피쿠로스의 정신적 쾌락
벤담은 쾌락에는 질적인 차이가 없고 오로지 더 많은 쾌락을 중시.
하지만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밀은 여러 가지 쾌락을 경험한 사람이 선호하는 쾌락이 보다 바람직한 쾌락이라고 주장.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은 누구나 질적으로 높고 고상한 쾌락을 추구할 것으로 보았음.
단순한 감각적 쾌락이 아닌 지적이고 내적 교양이 뒷바침되는 정신적 쾌락이 더 우월하다.
"만족하는 돼지가 되기보다는 불만에 찬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하는 바보가 되기보다는 불만에 찬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 그런데 만일 돼지나 바보라면 이것과는 다른 견해를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오직 자신이 속한 한 측면밖에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측면을 모두 알아야 이들 둘을 비교할 수 있다." - 밀 "공리주의"
인간의 정신적, 도덕적, 지적 쾌락(예술 감상, 철학적 사고, 지식 탐구 등)이 육체적이고 감각적인 쾌락(음식, 음주 등)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
밀의 공리주의는 정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면서 쾌락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쾌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러한 타인의 행복까지도 실현되기를 바라는 '이타심'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고자 한다.
에피쿠로스 학파의 쾌락 주의.
쾌락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상태가 아닌 '신체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에피쿠로스 학파에 있어서 쾌락은 '고통의 부재'.
여기서 에피쿠로스는 "최소한도로 충족되어야 할 쾌락"을 '몸의 쾌락'과 '정신의 쾌락'으로 나눈다. 몸에 있어서 최소한의 쾌락이 충족되면, '신체는 고통이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를 아포니아(aponia)라고 부른다.
정신에 있어서 최소한의 쾌락이 충족되려면,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정신적인 고통을 준다고 보고 우주와 고통, 욕망 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아타락시아(ataraxia/평정심)라고 부른다.
신체에 고통이 없으며 정신이 평안하다면 이는 쾌락이다. 누구든 평정심을 가지고 몸과 정신이 고통스럽지 않은 상태일 때 느껴지는 자유과 기쁨을 느껴봤을 것이다.
이에 더해 밀이 말하는 정신적인 쾌락을 즐길 때 인간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상태다.
말초적인 쾌락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중독되게 한다. 타인이 의미가 없어지고 나 자신에게 매몰된다. 고차원적인 지능을 가진 인간은 단순한 육체적인 쾌락이 아닌 지적인 쾌락을 느낄 수 있고, 진리를 찾아가는 기쁨을 안다.
또한 무언가에 극도로 몰두하고 집중할 때 느껴지는 정신적인 쾌락이 체육에서 말하는 러너스 하이, 운동에 몰입했을 때 느껴지는 자유함과 같다고 느껴진다.
오랜 우울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고통이 없기에 느껴지는 평안의 쾌락이라는게 대체 어떤 것인지 뼛속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그 괴로움과 한없이 떨어지는, 저 바닥 밑으로 한없이 가라앉는 고통이 사라지는 찰나,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한 쾌락인지.
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단순히 끝없는 폭식보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답을 찾아가는 순간의 쾌락은 또 얼마나 새롭고 기쁜 것인지. 술을 퍼마시는 것보다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그 순간에 몰입하는 감각이 얼마나 짜릿한지.